티스토리 뷰
목차
한국의 간암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1위입니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면 간은 안전하다고 막연히 믿어왔는데, 저는 그 믿음이 얼마나 안일했는지를 어머니를 통해, 그리고 올해 건강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지방간, 술 안 마셔도 생깁니다
일반적으로 지방간은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술과 담배를 평생 입에 대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간경화로 고생하시다 결국 50대 초반에 간암과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인은 B형 간염 바이러스였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아픕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B형 간염 예방 백신과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되면서 바이러스성 간암은 예전보다 크게 줄었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 최근에는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 질환(MASLD)으로 명칭이 바뀐 이 질환입니다. 여기서 MASLD란 알코올 섭취와 무관하게 과잉 에너지, 즉 먹는 양이 쓰는 양을 초과했을 때 그 잉여 지방이 간에 쌓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약 30%가 지방간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됩니다(출처: 질병관리청). 배부르도록 먹는 게 행복인 줄만 알았는데, 그 과잉 에너지가 고스란히 간에 쌓인다는 말이 지금은 무섭도록 와닿습니다.
- 알코올성 지방간: 과도한 음주로 인해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성 물질이 간 세포를 손상시켜 지방이 축적되는 상태
-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 질환(MASLD): 비만, 당뇨, 고지혈증 등 대사질환으로 인해 간에 지방이 과도하게 쌓이는 상태. 겉으로 뚱뚱해 보이지 않아도 내장 지방이 많으면 발생 가능
- 단순 지방간 → 지방간염 → 간 섬유화 → 간경화 → 간암으로 단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음
간경화가 되기까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다는 것
간은 흔히 '침묵의 장기'라고 불립니다. 상당히 망가질 때까지 별다른 증상을 내보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방간이 간염으로 발전하면 간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섬유 조직으로 손상 부위를 둘러쌉니다. 이것이 바로 간 섬유화입니다. 쉽게 말해, 피부에 상처가 나면 아물면서 흉터가 생기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처음엔 보호 반응이지만, 이 과정이 반복되면 간 전체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간경화로 이어집니다.
문제는 단순 지방간에서 간경화로 넘어가는 경계를 일반 초음파만으로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쓰이는 것이 간 탄성도 검사(FibroScan)입니다. 여기서 FibroScan이란 초음파를 간에 쏘아서 간 조직이 얼마나 단단한지, 즉 탄성도를 측정해 섬유화 진행 여부를 평가하는 비침습적 검사를 말합니다. 말랑말랑할수록 건강한 간, 딱딱할수록 섬유화가 진행 중이라는 신호입니다(출처: 서울대학교병원).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방간이 있어도 '아직 간경화는 아니니까'라고 안심하기 쉬운데, 그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흐릿하다는 겁니다. 체중의 5%를 감량하면 단순 지방을 줄일 수 있고, 7%를 빼면 지방간염이 호전되며, 10%를 감량하면 이미 진행된 섬유화도 일부 되돌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제게 꽤 현실적인 숫자로 느껴졌습니다.
방사선색전술
어머니가 투병하시던 시절, 치료 선택지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래서 간암이 재발할 때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때 방사선색전술이라는 치료법이 있었다면 어머니의 시간이 조금은 더 길지 않으셨을까 생각해봅니다.
방사선색전술(TARE, Transarterial Radioembolization)은 혈관 속으로 방사선을 내뿜는 미세한 구슬을 주입해 암 조직만 선택적으로 괴사시키는 시술입니다. 여기서 TARE란 사타구니 동맥을 통해 카테터(가는 관)를 간의 종양 공급 혈관 바로 앞까지 진입시킨 뒤, 방사성 물질이 코팅된 구슬을 직접 쏘아주는 방식입니다. 기존의 혈관 색전술처럼 혈관을 완전히 틀어 막는 것과 달리 서서히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급성 괴사로 인한 통증, 발열, 구토 같은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것이 장점입니다.
간암 치료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CAR-T 세포치료(CAR-T therapy)가 간암에도 적용될 가능성을 연구 중입니다. CAR-T란 환자 본인의 면역 세포(T세포)를 꺼내 암세포만 인식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뒤 다시 몸속에 넣어 암을 공격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현재 임상시험 준비 단계에 있으며, 간암 특이적 항원 발굴과 부작용 최소화가 향후 핵심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간이 그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습니다.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던 저도, 올해 건강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식습관과 운동 부족이 얼마나 간을 조용히 갉아먹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가족력을 되짚고 나니 더욱 그렇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지방간에서 간암까지 얼마나 걸려요?
A. 개인차가 크고 그 경계를 명확히 알기 어렵다는 것이 의학계의 솔직한 답입니다. 단순 지방간에서 지방간염, 간 섬유화, 간경화, 간암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될 수 있고, 중간에 염증 활성도에 따라 속도가 달라집니다. 이 때문에 단순 지방간 진단 이후에도 FibroScan 같은 섬유화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지방간을 없애려면 운동이 답인가요?
A. 운동도 중요하지만, 비율로 보면 식이요법이 약 70%, 운동이 약 30%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칼로리 섭취 자체를 줄이는 것이 먼저입니다. 현재 체중의 10%를 감량하면 이미 진행된 간 섬유화도 일부 역전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만큼, 체중 감량은 가장 효과적인 치료입니다.
Q. 방사선색전술은 어떤 간암에 쓰이나요?
A. 방사선색전술(TARE)은 수술이 어렵거나 종양 크기가 커서 직접 절제가 힘든 간암 환자에게 주로 활용됩니다. 간암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에 방사성 구슬을 직접 주입해 암 조직을 선택적으로 죽이는 방식이라, 기존 항암 치료보다 전신 부작용이 적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전문의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결론
저는 오랫동안 술·담배를 안 하면 간 걱정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병을 돌이켜보고, 올해 건강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제 식습관과 생활 방식을 제대로 들여다보니 그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 것이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가족력이 있는 저로서는 더더욱 남 일이 아닙니다.
지방간은 조용히 시작해서 조용히 악화됩니다. 한국의 간암 사망률이 OECD 1위라는 숫자는,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검진을 미루고 식습관 개선을 뒤로 미루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방간 진단을 받으셨다면 지금 당장 FibroScan 검사 일정을 잡아보시고, 체중의 10% 감량을 목표로 식단 조정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치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간이 망가지기 전에 막는 것만큼 확실한 치료는 없습니다.